작성일 : 18-12-11 13:54
스스로 피어나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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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늘 꽃밭에 있었다.

내 유년의 뜰은 사계절 꽃으로 빛났다.

크고 작은 꽃들이 색깔과 모양을 바꿔가며 계절을 알렸다.

아버지의 유별난 화초사랑에 꽃향기를 맡으며 호사를

누렸지만 꽃밭을 가꾸는 노역(?)으로 대가를 치루기도 하였다.

아침저녁 꽃밭에 물을 주는 일이며 한 무더기로 올라오는 싹들을 솎아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일, 마당 깊숙한 곳에 음식물찌꺼기 등을 묻어 퇴비를 만드는 일들은 가족 누구랄 것 없이 꽃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라 생각했다.

피고 지는 일에 정성을 쏟기도 했지만 더러는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파종하거나 묘종을 심어놓지도 않았는데 불쑥 피어나기도 하였다.

학창시절 조소수업은 평면작업과는 달리 흙의 촉감이며 골조를 만들어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흉상을 만들기 위해 각목으로 큰 형태를 잡고 노끈으로 묶어준 다음 흙을 붙여가며 원하는 모양을 잡아가는데 수업시간만으로는 완성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험기간 내내 게으름을 피워 들여다보지 않으면 머리에도 등에도 볼에도 이름 모를 싹이 나오곤 하여 초현실주의 작품을 연상시킬 때도 있었다. 흙에 묻어오든 바람에 실려 오든 생육할 만 한 토양이나 공간이 아니어도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게 경이로웠다.

40년을 넘게 화필을 어루고 달래어도 스스로 얻어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오늘도 씨름중인 작업실에서 창밖 담장 금이 간 벽 틈으로 피워 낸 꽃을 보며 나의 꽃은 언제쯤 스스로 화사하게 피어날지 고대해 본다.

햇살이 가득한 작업실에서 김 현 숙